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음력 3~4월경 황해도 봉산군(鳳山郡)에서 임시군사주비단(臨時軍事籌備團, 일명 籌備團)에 가입하여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같은 해 음력 12월 주비단 산하에 군자금 모집을 전담하는 별동대인 한용단(韓勇團)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임시군사주비단은 10명으로 분단(分團)을 만들고 그 위에는 소단(小團)과 연단(聯團)을 두었으며, 사령관(司令官)이 전체 조직을 통솔하였다. 주비단의 사령관은 이승길(李承吉)이었으며, 총무는 최치삼(崔致三), 연단장(聯團長)은 이형순(李亨淳), 소단장(小團長) 겸 분단장(分團長)은 김두성(金斗星)이었다. 주비단에서는 산하에 군자금 모집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일종의 별동단(別動團) 조직으로 한용단을 설치하였다. 주비단 및 한용단의 중심 인물에는 대체로 기독교인이 많았으며, 이외에 천도교(天道敎)ㆍ시천교(侍天敎) 교도도 일부 참여하였다. 이들은 「임시군사주비단규칙서(臨時軍事籌備團規則書)」, 「군무총장훈시(軍務總長訓示)」, 「재무총장 군자금청구서」 등의 문서를 제작하고, 국외에서 『독립신문(獨立新聞)』, 『신한청년(新韓靑年)』,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大韓民國臨時政府公報)』 등을 들여와 단원들에게 배부하는 등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다.
김호익은 1920년 음력 12월 봉산군 초와면(楚臥面)에서 오병섭(吳秉燮)ㆍ이승윤(李承潤)을 비롯해 김정일(金鼎一)ㆍ김기형(金基瀅)ㆍ임성준(林成濬) 등과 비밀회의를 가졌다. 오병섭은 이미 같은 해 음력 1월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북율면(北栗面) 북지리(北芝里)에 거주하는 김근원(金根院)의 권유로 주비단에 가입하여 군자금청구서, 군자금보조계약서 등의 서류를 만들어서 각 분단장에게 배부한 바 있었다. 이날 회합에서는 김정일을 단장으로 하여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한 전담기구로 한용단이 조직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서 발행한 액면(額面) 100원 권의 공채(公債)를 파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김호익은 김기형으로부터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100원 권 공채 8매를 교부받고 군자금 모집 명령을 받았다. 1921년 1월 말경 이승길ㆍ이형순ㆍ오병섭 등 수십 명의 동지들과 함께 사리원경찰서(沙里院警察署)에 붙잡혔다.
1921년 5월 19일 해주지방법원(海州地方法院) 서흥지청(瑞興支廳)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2년 2월 9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21. 5. 13)
- 獨立新聞(1921. 5. 31)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編, 原書房, 1967) 제1권 分冊 592~59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66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臨時軍事籌備團及韓勇團員의 檢擧(1921. 5. 10)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3)
- 東亞日報(1921.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