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만암은 1933년경부터 증산교(甑山敎)의 일파인 원군교(元君敎)의 후천선경(後天仙境)을 실현하고자 하는 신념을 가지게 되어 부안군(扶安郡) 산내면(山內面)으로 이주하면서 홍순문(洪淳文)의 지도하에 강증산의 교리에 대하여 굳은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원군교의 교주인 홍순문은 이전부터 현재의 세계정세는 강증산의 교리인 신도조리공사(神道調理公事)에 의해 세계전쟁이 발발하게 되며 가까운 장래에 이 대전은 끝이 날 것이며, 그때 교조 강증산은 현세에 재림하여 천지인삼계(天地人三界)를 통리하는 삼황전하(三皇殿下)가 되며 조선은 독립하고, 세계의 선진국이 되며 우리의 신도들은 강증산의 수제자가 되어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에 걸쳐 육신이 불로불사(不老不死)하는 복록(福祿)을 얻어 세계인류를 지도할 자격을 부여받게 될 것이며, 이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현재 강일순을 교조로 하는 강력한 결사를 조직할 것을 제의하였다.
김만암은 1941년 5월 26일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에서 홍순옥(洪淳玉), 홍순문(홍순옥의 實兄), 국채준(鞠採準), 전봉균(田鳳均), 박승주(朴昇柱), 강재숙(姜在淑) 등과 회합하고, 홍순문의 제의에 찬동하여 그들과 함께 무명의 결사를 조직하였다. 6월 20일경 유원상(柳源相)의 자택에서 유원상에 대해 결사의 내용과 목적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은 후 권유하여 결사에 가입시켰으며, 7월 12일경 홍순문의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결사의 목적이 실현,성취되도록 기원제를 행하였다.
1941년 8월 이후부터 1942년 3월경까지 전라북도 부안군과 정읍군 등지에서 교인들을 결사에 가입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결사의 목적이 실현,성취되도록 심고(心告)와 묵허(默虛)와 기원제, 망량제(魍魎祭)를 거행하는 등 조선의 독립 및 민족의식 함양을 기원하고 결사의 목적 수행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42년 6월 일제의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김만암은 1944년 1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전주지방법원:1944.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