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의령(宜寧) 사람이다. 1940년 일본 경도(京都)의 대화철공소(大和鐵工所)에 근무하던 중, 유귀복(柳貴福) 등의 권유로 유귀복·이차봉(李且鳳)·최정웅(崔正雄)·박판이(朴判伊)·진산양조(晉山良照)·이인유(李仁裕) 등이 결성한 독립운동 그룹에 가입하였다. 그후 공장내 동지 규합에 힘을 기울여 같은 철공소 직공 김성천(金成川, 창씨명 川村德男)을 동지로 규합하는 한편, 동년 9월 동 철공소 내에서 유귀남·김성천과 함께 서서(誓書)와 불변서(不變書) 등을 작성하여 서로 혈판(血判)으로써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맹서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할 결의를 다졌다. 그후 유귀남·김성천과 함께 조선독립혈맹(朝鮮獨立血盟)의 본거지를 조선 본토에 설치하기로 결의하고, 백두산(白頭山) 입롱(立籠) 준비와 조선국기(朝鮮國旗) 제정을 준비하여 귀국하였다. 귀국후 고향인 경남 의령에 체류하면서 향후 거사계획을 협의하였으나 일제의 경계가 삼엄하여 백두산 입산을 중지하고 다시 일본으로 도항하였다. 일본으로 재도항후 공장에 분산 취업한 김두만 등은 독립운동을 모색하던 중 1941년 5월 16일 대판(大阪)에서 혈맹(血盟)한 서서(誓書)를 소지하다 체포되었다. 그후 동년 10월 16일 대판지방재판소(大阪地方裁判所) 검사국에 송치되어 1942년 10월 6일 동 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事實照會回報書(1944. 11. 30:宜寧警察署長)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3卷 792∼794面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 外) 第7卷 206∼210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2卷 808∼811面
- 獨立有功者平生履歷書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3輯 327·70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