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중국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원조·후원하기 위해 조직된 임시군사주비단(臨時軍事準備團)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소단장 겸 서기로 활동하였다. 황해도 사리원(沙里院) 일대에서 활동하던 이 단체는 10명을 분단, 10개 분단을 소단, 10개 소단을 연단으로 각각 조직하며, 연단을 총괄하기 위해 사령부를 두고 사령장이 지휘하는 계통을 갖고 활동하였다.
군자금 모금활동은 주로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경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나석주(羅錫疇) 의사를 중심으로 동지들과 협의하에 이루어졌다. 즉 재령군(載寧郡) 북율면(北栗面) 북지리(北芝里)의 최호준(崔皓俊), 남지리(南芝里)의 최세욱(崔世郁), 그리고 신계군(新溪郡) 적여면(赤余面) 평촌리의 박정손(朴正孫), 이시태(李時泰) 등과 함께 나석주 의사의 집에 모여 독립운동방략을 토론하고 군자금 모금활동 결행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군자금을 모아 해외로부터 다수의 부로우닝권총과 탄환을 구입하여 나석주 의사의 집을 거점으로 삼고 군자금 조달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나석주·최호준·최세욱·박정손·이시태 등과 함께 권총을 소지하고 1920년 1월 4일 저녁에 황해도 사리원 시북리(市北里) 237번지에 사는 황해도의 대표적 부호 최병항의 집으로 가서 그 집을 포위하고 현금 630원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그때 이들은 그 집을 떠나면서 “경찰서에 우리가 다녀갔다는 것을 알려라”고 하였을 만큼 대담하게 행동하였다. 하지만 당시 사리원경찰서에서는 경찰력을 집중하여 이들을 추적하였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나석주 의사와 함께 군자금 모금활동을 계속하였다. 1920년 3∼4월경 변장을 하고 각기 권총을 휴대한 채 안악군 읍내 장날 부호 김응식의 집에서 군자금을 모금한 것 등이 그 예이다. 1920년 황해도에서 일어난 군자금 모금활동의 대부분은 나석주 의사와 함께 거사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군자금 모금활동으로 일제 경찰들이 황해도 일대에서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이른바 ‘범인’ 색출에 혈안이 되자, 나석주와 함께 1920년 음력 9월 22일경 진남포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의 행적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곧 국내에 다시 들어와서 활동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1920년대 전반 大邱·慶北지역의 독립운동(光復會 大邱·慶北聯合支部, 2003) 16∼17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6) 제1권 592∼59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권 966면
- 醒山김유先生事蹟碑文(2001. 12)
- 金相玉·羅錫疇抗日實錄(社團法人金相玉·羅錫疇烈士記念事業會, 1986) 238∼239·241∼245·2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