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신민회(新民會) 회원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1909년 7월 신민회의 외곽단체로 설립된 태극서관(太極書館)에서 사무 및 주임으로 활동했다. 당시 태극서관은 신민회가 추진한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세워진 조직이었다.
태극서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는 1911년 일제가 조작한 소위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붙잡혔다. 1910년 일제는 한국을 강점한 이래 독립운동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는데, 특히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서북지역 인사들과 신민회(新民會)를 탄압하기 위하여 1911년에 안악사건(安岳事件)과 105인사건 등을 조작하였다.
신민회 조직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일제가 날조한 105인사건의 내용은, 1910년 12월 압록강철교 준공 축하식에 참가한 조선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를 '암살(暗殺)'하려던 계획이 있었다면서 6백여 명의 애국지사들을 체포한 것이었다. 당시 일제는 온갖 고문과 악형을 동원하면서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한편 사상전환을 강요하였는데, 김근형은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대한매일신보(1909. 9. 7, 1910. 3. 6)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7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0권 671면
- 민족의 수난(선우훈, 1959)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