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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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金慶喜
이명 金敬姬, 金敬喜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가족관계창설일 2023-02-17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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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5 훈격 애국장
1916년 평양(平壤)에서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 교사(敎師)로 재직중 학생들에게 배일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면직된 후 1919년 삼일운동이 전개되자 여자운동원의 항쟁을 지도하다가 일경의 검거를 피해 상해(上海)로 망명하였으며, 7월말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 부인회(婦人會)를 조직하고 8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면서 군자금(軍資金) 모집에 전력하던 중 병을 얻게 되자, 군자금을 상해(上海)의 동지에게 송금한후 부회장에게 부인회의 일을 위임하고 병사(病死)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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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평양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 교사로 근무하면서 1913년에 비밀결사 송죽회(松竹會)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비밀결사 송죽회는 숭의여학교 출신과 교사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여성비밀결사로서 점조직에 의한 절대 비밀을 유지해 갔다. 이들 송죽회 회원들은 전국 각처의 여학교에서 교편은 잡으며 학생들의 항일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는데, 그는 배일혐의로 1916년 일제에 의해 면직당하였다. 면직 후 그는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독립의식 고취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평양에서 기독교회 여성들을 주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의 추격을 받아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가하던 그는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19년 7월에 비밀리에 귀국하여 평양에서 비밀결사 부인회(婦人會)를 조직하고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부인회는 회원의 규모가 8백여 명에 이를 정도로 조직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렇듯 부인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던 중 그는 병을 얻어 1919년 9월 19일에 작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8·118면
  • 독립신문(1919. 10. 2, 10. 4)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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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경희 김경희(金敬喜), 김경희(金敬熙) 평안남도 평양(平壤) 3.1운동, 애국부인회 사건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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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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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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