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4012
성명
한자 金東澤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일본방면 포상년도 1995 훈격 애족장
1919. 3.16-17 경북(慶北)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예안시장(禮安市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에서 수천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고창(高唱)하며 시위(示威)전개(展開)하다 피체(被逮)되어 징역 6월에 집행유예(執行猶豫) 2년을 받았으며 일본(日本) 대판(大阪)에서 1932년 공명학원(共鳴學院) 교사(敎師)재직(在職)하면서 전협토건(全協土建) 대판지부(大阪支部)가입(加入)하여 천주일반노조(泉州一般勞組)본부상임위원(本部常任委員)을 지냈으며 동방평론(東方評論), 삼천리(三千里) 등의 대판지사(大阪支社)를 설치 운영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1936. 12월 피체(被逮)되어 1938. 7. 19 징역 1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16일 경북 안동군 예안면(禮安面) 예안시장(禮安市場)에서 이동봉(李東鳳)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자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수비대를 물리치고 주재소(駐在所)를 점거하였다. 또한 이튿날인 17일에는 안동장날의 만세시위운동을 후원하기 위하여 철야 행군으로 안동에 도착하여 경찰서와 군청 등을 습격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1919년 3월 24일 대전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 방면되었다.

그 후 서울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를 졸업한 뒤 일본 대판(大阪)으로 건너간 그는 1932년 전협토건(全協土建) 대판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한편, 천주일반노동조합(泉州一般勞動組合) 본부 상임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공명학원(共鳴學院)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사상잡지(思想雜誌)인 『동방평론(東方評論)』, 『삼천리(三千里)』 조선현대사(朝鮮現代社) 우송부(郵送部)의 대판지사를 설치하고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다가 1936년 12월 14일 붙잡혔다.

1938년 7월 19일 대판지방재판소(大阪地方裁判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
  • 3·1운동실록(이용락) 747·74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556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편) 제3권 ② 711·908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동택 - 경상북도 안동(安東) 3.1운동,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오사카)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경상북도 안동시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김동택(관리번호:4012)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