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 소재한 대한독립광복군(大韓獨立光復軍) 국내지부인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청년단은 당시 광복군 사령장(司令長)이었던 조맹선(趙孟善)의 명령에 따라, 1920년 12월 17일 조용하(趙用河)를 단장으로 국내에서 군자금 및 단원 모집, 관공리(官公吏) 처단 등을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이었다. 조용하 등은 조맹선으로부터 권총 및 탄환 등의 무기, 격고문(檄告文) 등을 제공받아 1920년 10~11월경 국내로 들어왔다. 이들은 평북 영원군(寧遠郡)에 도착한 후 윤창철(尹昌哲) 등은 평남 성천군(成川郡) 방면에서, 조용하 등은 평남 개천군과 순천군(順川郡) 방면에서 단원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궁이양은 조용하 등과 1920년 12월 17일 대한독립청년단을 결성하였다. 같은 해 12월 28일 순천군 백낙현, 12월 29일 봉명면장(鳳鳴面長) 김형철(金瑩哲), 1921년 1월 18일 개천군 현기덕(玄基德), 3월 15일 순천군 김관호(金寬鎬)의 집 등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는 중국 관전현 본부로 국내 사정을 보고하고, 1921년 2월 조맹선 대리 이웅해(李雄海)로부터 평안도 지방대(地方隊) 참의장(參議長)으로 임명된 뒤 평안도와 황해도에 대한독립청년단의 연락기관을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11월 18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살인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1. 4. 17)
- 每日申報(1921. 4. 18, 7. 23, 11. 9, 11. 27)
- 獨立新聞(1921. 4. 30)
- 新韓民報(1921. 6.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4집 4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