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34. 3.25
3. 1936. 2.19 서울
4. 1932. 1
5. 1933. 3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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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937. 7
1937. 8
8. 1945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서울 사람으로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 부친 이회영(李會榮), 숙부 이시영(李始榮) 등이 만주로 망명하게 됨에 따라, 통화현(通化縣)에서 출생하였다. 그후 가족을 따라 북경(北京)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1929년에 부친 이회영(李會榮)을 따라 상해로 갔다. 그의 부친은 1932년 11월에 만주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마련하고 주만일군사령관 등을 암살할 목적으로 대련(大連)으로 가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그는 상해에서 화랑청년단(花郞靑年團)과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가입하여 백정기(白貞基) 정화암(鄭華岩) 오면직(吳冕稙) 엄순봉(嚴舜奉) 원심창(元心昌) 이강훈(李康勳) 등과 같이 활약하였다. 1933년 3월에는 남화한인연맹의 행동단체인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조직하고 상해의 6 3정에서 당시 주중공사 유길명(駐中公使 有吉明)을 폭살 하려던 계획에 관련되었으며, 군자금 모집 활동에도 앞장섰다. 1935년 3월에는 정화암(鄭華岩)과 협의하여 엄형순(嚴亨淳;舜奉)과 함께 상해 조선인거류민회(居留民會) 부회장과 고문을 역임한 바 있는 친일파 이용로(李容魯)를 사살하는 데 성공하고 도피하다가 체포되었다. 본국으로 압송된 뒤 1936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엄순봉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그는 징역 1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9년 8월, 그는 마포감옥에서의 옥중투쟁으로 다시 징역 10월 23일형을 가형 받아 광주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치르고 1945년 8 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50 55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78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23 128 825 833 837 838 839 840 841 8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