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남 하동(河東) 사람이다.
일본 동경의 조도전(早稻田) 대학에 재학 중이던 그는 1925년 6월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동경지부(東京支部)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항일독립운동을 폈다. 이어 그는 동 동맹 동경지부의 조직책으로 선임되어 재일(在日) 한국인 학생조직을 규합하여 일본내 학생운동의 기간체(基幹體)를 확보하고자 힘을 쏟았다.
잠시 귀국하였던 그는 국내 독립운동 단체와 여운형(呂運亨)으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상해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독립운동을 펴기 위하여 1928년 6월 다시 일본에 잠입하였으나 일경의 감시가 심하여 동년 9월 귀국하였다.
경남 진주(晋州)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중 일경의 추적을 받아 고향 뒷산에서 붙잡혀 동경으로 압송되었다고 한다.
1932년 10월 26일 동경 공소원(控訴院) 검사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34년 소위 칙령 19호에 의해 징역 2년 5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범죄인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