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배재학당에서 수학하다가 1923년 상해로 건너가 원광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10월 상해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인학우회(韓人學友會)를 창립하여 그는 재무부 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1927년 3월 26일에는 상해 3·1당에서 주요섭(朱耀燮)·변장성(邊長城)·염온동(廉溫東) 등과 한인학우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민족독립운동의 선구, 청년의 단결 및 독립운동의 이론과 실천적 정책 수립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3월 그는 임시정부의 약헌 기초위원(約憲起草委員)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는데 임시약헌의 특색은 집단 지도체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즉 종래의 대통령 중심제 및 그 뒤를 이은 국무령제(國務領制) 헌법이 모두 정부 운영에 폐단이 있음을 인정한 지도자들은 종래 국무령제 헌법에 대체하는 임시약헌을 기초하게 하여 결의 공포하게 된 것이다. 함께 위원으로 선임되었던 인물은 김 갑(金甲)·이규홍(李圭洪)이었다. 이 임시약헌에 의하면 정부에 수반(首班)이 없고 국무위원으로 조직된 국무회의의 결의로 국무를 총괄하게 되었으며 국무위원 중에서 주석(主席) 1인을 선정하되 주석의 특권은 의회를 주재하는 정도의 미미한 것이었다. 1928년 현정건(玄鼎健)·변동화(邊東華) 등 한인학우회 동지들과 상해 불란서조계에서 체포되어 본국에 압송되었으며, 동년 12월 21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21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284 422 923면
- 동아일보(1926. 11. 1, 1927. 4. 15, 1928. 11. 13, 12. 23)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81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592 593 594 595면
- 고등경찰요사 141 244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623·63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0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