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전라북도 임실(任實) 사람이다.
1919년 3월 20일, 김영팰(金永弼)·힌인석(韓麟錫) 등과 함께 지사면 방계리(只沙面芳溪里)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 오후 10시경 방계리에서는 두 갈래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그 한 갈래는 최완호(崔浣鎬)·이영곤(李永坤) 등이 주동이 되어 70여명의 주민과 함께 방계리 북쪽 산마루에서 전개되었다.
한편 이와 같은 시간에 그는 김영필·한인석·최영렬(崔永烈)·최기현(崔基鉉) 등과 주동이 되어 방계리 언덕에서 5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마을을 돌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후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어, 이해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50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492·14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