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상주(尙州) 출신이다.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되자 전국은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의병운동에 휩싸였다. 권상중은 국운이 쇠잔하여 감에 통분함을 금치 못하고 1908년 경상북도 청송(靑松)에서 동지 서주일(徐柱日) 등 수십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이들은 총으로 무장하고 각지를 전전하며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였다. 1909년 음력 11월 25일 임용상(林龍相) 송남면(宋南面)과 함께 청송군 현남면 낙곡동에 거주하는 윤덕동(尹德洞)으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려 하였으나 불응함으로 왼쪽 복부에 자상을 입히고 십 냥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일련의 군자금 모금 활동이 왜경에게 포착된 바 되어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1910년 7월 25일 대구지방재판소 형사부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이에 불복하고 공소(控訴)하였으나 10월 23일 대구공소원에서 공소 기각 판정을 받고 그대로 징역 7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대구지방재판소 판결문
- 대구공소원 형사부 판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