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1939년 3월에 도일(渡日)하여 1941년 6월 경도(京都)의 도촌토공(島村土工)으로 근무중 궁진(宮津)중학을 졸업하고 토공으로 취직한 전경원(全京元)과 만나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김말도(金末度)·이상문(李相文)등 수명의 동지를 확보하고, 동년 9월부터 여사군(與謝郡)소재 미륵신사 경내에서 누차 회합하고 민족정신고취 및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였다. 그 방법으로는 민족차별의 철폐, 징병제도의 반대, 항공병을 지원해서 일본군 기지 폭격, 일본 경찰에 들어가 대대적인 독립운동전개 등의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 1944년 6월 일경의 토공숙사 일제 수색으로 전경원의 일기장이 발견됨으로써 이러한 활동이 탐지되어 동지들은 모두 붙잡혔다. 그는 심한 고문을 받으며 장기간의 예심 끝에 1945년 9월에야 경도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경도지방재판소예심판결의 타인과의 접촉금지결정서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267∼270면
- 예심종결결정(1945. 9. 20 경도지방재판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423·14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