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함북 부령(富寧) 사람이다.
일찍이 북간도로 건너가 연길현(延吉縣)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 활동하였다.
1920년 청산리 대첩에서 참패를 당한 일제는 독립군 활동의 인적, 물적 기반이 되었던 북간도 일대의 한인촌락을 대상으로 잔인한 보복을 가하는 소위 경신대참변(庚申大慘變)을 일으켰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연길현 용지사(勇智社) 간장암동(間獐岩洞:샛노루 바위) 참극으로, 이때 그도 희생되고 말았다.
용정(龍井) 동북쪽 약 25리 지점에 있던 간장암동은 마을 주민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로 그곳에 있던 영신학교(永信學校)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있던 대표적인 한인마을이었다.
1920년 10월 30일 영본(鈴本) 대위가 인솔한 77명의 일군은 간장암동을 포위한 뒤 전주민(全住民)을 교회당에 집결토록 하였다. 그리고 강제로 끌려온 주민 가운데 40대 이상의 무고한 남자 33명을 포박지어 꿇어앉힌 다음, 짚단을 쌓고 석유를 뿌린 뒤 불을 질러 이들을 무참히 몰살시켰던 것이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현대사자료(강덕상) 제28권 579·618면
- 간도독립운동소사(홍상표, 1966. 10) 79∼81면
- 일본의 한국침략사료총서(일본외무성 육해군성편, 1990. 3. 20) 제23집 677∼68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