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북 김제(金堤) 사람이다. 1915년에 결성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이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인사들을 통합하여 대구(大邱)에서 조직한 혁명단체로서 전국적인 조직과 더불어 만주의 독립군기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1910년대 최대의 국내 항일조직이었다. 대한광복회는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혁명기지를 확보한 후 적시에 폭동으로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군자금 수합이 친일부호들의 외면으로 예정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혁명 계획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대한광복회는 국민적 각성과 함께 식민성 지주들에 대한 응징으로 친일부호를 처단하는 활동을 펴 나갔다. 그리하여 경북·전남·충남의 세 지역에서 악성 부호들을 처단했는데, 이때 그는 한훈(韓焄)·유장렬(柳璋烈) 등과 함께 양재학(梁在學)·서도현(徐道賢) 등 전남 지역의 친일부호 처단활동에 참가하였으며 일본헌병 분견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일경과 주구배 숙청에 전력하였다. 그 후 그는 대한광복회가 발각될 때 일제의 포위망을 피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펴다가 1924년 일경에 붙잡혀 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2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44면
- 판결문(1926. 3. 29 전주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