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황해도 신천(信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11일 신천군 문화읍(文化邑)에서 장날을 이용,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여 천도교인 문창규(文昌奎)·이영희(李泳禧) 등과 함께 태극기를 만들며 한편으로는 기독교인들과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고, 합세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 날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그리고 장터에 모인 군중까지 모두 1,000여명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내를 누비며 시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7월 1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상고하였으나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284∼28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747∼7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