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1905년 평산(平山) 지방에서 이진룡(李鎭龍)·조맹선(趙孟善) 등과 같이 의병활동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박장호(朴長浩)·조맹선·백삼규(白三奎)·전덕원(全德元)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에서 동년 4월 15일에 조직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사한장(司翰長)에 임명되었다. 1919년 11월에 도총재 박장호(朴長浩)의 밀명을 받고 국내 각도·각군·각면에 독립단의 지단을 설립함과 아울러 단원 모집, 군자금 모금등의 사명을 띠고 황해도 해주(海州)로 들어왔다. 이곳을 중심으로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및 서울 등지에 선전문서를 배부하고 단원을 확보하며 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하였다. 특히 일본내에 거주하는 각 계층의 한국인에게 독립단원에게 협조하고 관리는 공직을 버리고 적을 섬멸하여 국권을 회복하자는 통고문 등을 작성 배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 사실이 일경에 탐지되어 마침내 체포되었으며 1921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8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그는 지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르면서도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동년 12월 9일에 개정된 경성복심법원의 재판정에서 "필부지지는 불가침(匹夫之志는 不可侵)"이라고 기염을 토하며 굳굳하게 버티었다. 그러나 끝내 8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1. 9. 30 경성복심법원)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1·39·58·252·288·42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9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984면
- 동아일보(1921. 7. 3, 9. 18, 9. 21, 9. 23, 11. 8, 12. 10字)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4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692·1068·1069∼108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497·498·49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3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