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3 중순경 경남 (慶南) 창원군 (昌原郡) 창원읍 (昌原邑) 중동 (中洞) 청년회관 (靑年會館) 에서 설관수 (薛灌洙) 송석민 (宋錫敏) 신경환 (申璟煥) 등의 동지들과 회합하여 만세시위 거사를 계획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각 500여매를 제작하는 한편 창원군 (昌原郡) 동면 (東面) 의 군중동원을 책임맡고 거사일인 3월 23일 장날 창원보통학교 (昌原普通學校) 의 대수정 (大樹亭) 에 운집한 6,000~7,000여명의 군중 앞에서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고창 하며 군중들과 함께 시위하다가 피체 되어 징역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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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중순경 창원군 창원읍(昌原邑) 중동(中洞)에 있는 청년회관에서 설관수(薛灌洙)·송석민(宋錫敏)·신경환(申璟煥)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5백여 매를 만드는 한편 창원군 동면(東面)의 군중동원 책임을 맡아 3월 23일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장날인 이날 그는 창원 보통학교에 집합한 6∼7천여 명의 군중 앞에서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한 후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군중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같은 해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4권 467·468면
- 3·1운동비사(이병헌) 941면
- 부산·경남 3·1운동사(3·1동지회, 1979. 9. 10) 784∼786면
- 매일신보(1919. 5. 29)
- 범죄인명부(창원군 동면장, 1981. 5. 1 발행)
- 3·1운동실록(이용락) 64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241∼2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