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곡성(谷城)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즈음 전남 곡성군 촌동면(村洞面)의 면장으로 재직하던 양원모는 국권회복을 위해 거의한 의병들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1909년 8월 동면 선주산에 주둔하던 조규하(趙圭夏)의진에 군량을 조달하고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구례헌병대와의 전투에서 조규하의병장이 순국하자 그 의로운 시신을 수습토록 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탐지한 일병에 의해 붙잡히고 말았다. 일병은 코에 물을 붓고 잔혹하게 구타하다가 실신하자 횃불로 전신을 지지는 등 금수같은 고문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너희들은 우리 나라의 원수이다. 힘이 없음을 한탄할 뿐이오 어찌 너희에게 보고하여 우리 선비의 기절(氣節)을 막겠느냐" 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혹한 고문 끝에 일군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오인하여 물러갔으며, 그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간신히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湖南節義錄(1964) 95面
- 湖南誌(1963) 26面
- 谷城鄕校誌(1958) 卷之四 42面
- 全南道誌(1968) 41面
- 내고장 곡성(1994) 제2호 45·46面
- 行狀(1946. 4月)
- 谷城郡誌(곡성노인회, 1956) 56面
- 谷城鄕土誌(1982) 649面
- 心菴梁公遠謨義蹟碑(1963.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