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 재학중 3·1독립운동에 참가한 후 학업을 중단하고 독립군의 국내 무기반입을 도왔다.
1923년 중국 북경(北京)으로 망명하여 학업을 계속하고 있던 중 형인 김시현(金始顯)이 일경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김원봉(金元鳳)을 만나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동년 가을 그는 군자금 모집과 일제관공서 폭파 및 일제고관 주살 등의 계획을 세우고 국내로 들어왔다가 동년 12월 22일 구여순(具汝淳)과 함께 붙잡혀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4년 10월 출옥한 후 다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1925년 신민부(新民府)의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를 수료하고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24. 2. 28 京城地方法院)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99·101·276·277·278面
- 若山과 義烈團(朴泰遠) 164面
- 韓國民族運動史料 (中國編) (國會圖書館) 482·489面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警務局) 73面
- 東亞日報(1923. 12. 22, 12. 23, 12. 25, 12. 29, 1924. 2. 6, 2. 13, 2. 15, 2. 28)
- 豫審終結決定書(1924. 1. 25 京城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