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황해도 신천(信川)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신천군 문화면 동각리(文化面 東閣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신천군의 3·1독립운동은 문화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곳 기독교인 및 천도교인들은 3월 초부터 만세운동을 거행하기 위하여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여 오던 중, 3월 11일 장날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오전 11시경 장꾼들이 많이 모여 들기를 기다려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3백여명의 애국동포들이 모여 대한독립을 선언한 다음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니, 장꾼들이 모두 이에 호응하여 1천여명의 만세시위대열을 이루어 행진하였다. 이어 그는 3월 15일 초리면 달천(草里面 達泉) 장날에도 궁흥면과 문화면을 비롯한 3개 면민을 중심으로 3백여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같은 해 3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하며 6월 12일 평양복심법원을 거쳐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우리민족으로서 잃었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독립만세를 일으킨 것인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하고 항변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745∼747面
- 判決文(1919. 7. 26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284∼28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