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고양(高陽) 사람이다.
1908년 《동경유학생회월보(東京留學生會月報)》주간 및 편집을 맡았으며 1910년 국권침탈을 반대하는 장서(長書)를 동경유학생 연명(連名)으로 작성하여 본국정부에 제출하였다.
1911년부터 1913년까지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강사로 학생교육에 전념하였다.
1913년 이회영(李會榮)·이동녕(李東寧) 등과 함께 중국 동삼성(東三省)에서 독립군 기지건설을 위한 후보지 선택을 목적으로 현지를 답사하고, 1918년 이회영이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중국망명을 추진하게 되자 북경(北京) 연락책으로 활동하였으나 황제의 급붕(急崩)으로 공작이 좌절되었다.
1919년 3월 김창숙(金昌淑)을 만나 유림(儒林)의 파리장서(巴里長書) 발송에 참여하였으며 조중헌(趙重憲)·윤중수(尹中洙) 등과 함께 중국 상해(上海) 방면의 이동녕(李東寧)·이회영(李會榮) 등에게 김창숙에 대한 소개장을 발송하였다.
1920년 이상재(李商在)·김사묵(金思默) 등과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를 창립하여 후진을 육성하고 1921년 11월 장덕수(張德秀)·김사국(金思國) 등과 서울청년회를 조직하여 초대이사장을 맡았다.
1922년 6월 박영효(朴泳孝)·이상재(李商在) 등과 함께 한국인의 단결과 자각을 통해 생존권의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민우회(民友會)를 조직하고 그 이사에 선임되었다. 1923년 1월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를 조직하고 그 이사에 선임되어 활동하였으며 1924년 7월 시대일보(時代日報)를 인수하기 위하여 임경호(林敬鎬)와 함께 보천교(普天敎)측 대표로 파견되어 이사로 활동하였다.
1925년 독립군 기지건설을 목적으로 20만원을 목표액으로 정하고 활동중인 김창숙의 군자금 모집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였고 1933년 중앙문고(中央文庫)를 설립하여 문화재 보호사업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江華史(江華文化院, 1976) 916·917面
- 民族運動家 아내의 手記(李恩淑) 162面
- 經營論評(高麗大, 1986) 29輯 5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8卷 926·927·93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0卷 637·689·692面
- 東亞日報(1920. 6. 28, 1922. 6. 19, 1923. 1. 22, 1924. 7. 11)
- 中央日報(1973.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