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함남 장진군(長津郡) 신남면(新南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장진군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고원지대이므로 3.1운동의 소식이 비교적 늦게 전달되었다. 장진에서 최초로 시위가 일어난 것은 3월 14일 신남면 고토리(古土里)에서였다. 한면각을 비롯한 주민 2백여 명은 오후 4시 고토리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시가행진을 하다가 헌병주재소 앞에 이르러 더욱 소리를 높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헌병들은 시위대에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마구 폭행을 가하였다. 격분한 시위대도 이에 맞서 큰 충돌이 벌어졌다. 헌병들은 수적으로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위대의 기세에 눌려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겁을 집어먹은 헌병들은 군중에게 무차별사격을 가하였다. 그러자 시위대는 헌병대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이때는 이미 전신 시설이 파괴되어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헌병보조원 1명이 탈출하여 하통리(下通里) 헌병대에 이르러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하통리 헌병대는 즉시 출동하여 시위 군중을 무참히 짓밟고 해산시켰다.
시위 후 체포된 한면각은 1919년 8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았고,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728면
- 매일신보(1919. 8. 12)
- 判決文(高等法院: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