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강계읍의 만세시위는 영실중학교와 명신학교 교사 그리고 기독교인에 의해 준비되었다. 영실중학교 학생들은 태극기 2천장을 만들고 태극기를 매달 싸리나무를 구했다. 그리고 천도교인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건네받고 계례지병원 지하실에 등사판을 설치하고 2,000장을 찍었다.
4월 8일 11시 남장대 예배당 높은 종각에서 갑자기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는 미리 약속한 신호였던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이 골목 저 골목에 매복하여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집집마다 돌리기 시작했다. 장날의 장꾼이 합세하면서 군중의 수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태극기를 중심으로 모여든 군중은 명운행의 선창으로 소리 높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태극기와 악대를 따라 행진을 개시하였다. 행렬이 북문에 이르자 기마헌병들이 총에 칼을 꽂아 들고 군중을 위협하며 발포하기 시작했다. 이날 일본군의 발포로 현장에서 정준이 제일 먼저 쓰러져 죽고 천도교인 김병찬(金秉贊)과 상인 손주송(孫周松), 전도사 인국원(印國元)의 부인 한씨(韓氏) 등이 죽었다.
탁재석은 강계읍의 만세시위에 나팔을 불면서 시위를 독려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처분을 선고받고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84, 486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271~2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