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을 이어가기 위하여 전라남도 영암군에서도 장날을 계기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그러던 4월 10일 오전 10시에 일제의 식민정치를 규탄하고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때 최한오는 박규상(朴奎相) 등과 함께 서구림리의 구림보통학교(鳩林普通學校)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학생들을 나오게 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로 인하여 체포되어 1919년 6월 18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장흥지청(長興支廳)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202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 : 1919. 6. 18)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605~6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