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함경북도 경성(鏡城)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3월 중순경 향리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1919년 7월 초순 동지 이상호(李相鎬) 등 8명은 송윤섭(宋玧燮)의 집에서 비밀리에 회합하고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내 연통제(聯通制) 조직을 적극 호응, 가담키로 결의하였다.
그는 연통제 경성군(鏡城郡) 지부 조직을 완료한 뒤 동지들의 권유로 재무일을 담당, 우선 군자금 모집에 적극 가담하여 군내(郡內) 유지 부호로부터 독립 성금(誠金)을 수백원 거출 임정의 조직을 통하여 송달한 바 있었다. 이 운동을 더욱 대규모적으로 확산 보급시키기 위하여 서울에 올라가 윤태선 전재일 등과 함께 13도 통감부를 조직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활약하다가 1920년 3월초 경성군 자택에서 미행하던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1920년 8월 10일 함흥(咸興)지방법원 청진지청(淸津支廳)에서 징역 4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년 2월에는 서울에서 신간회(新幹會)가 조직되어 일제하 유일당(唯一黨)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중앙본부와의 연락을 통해 함경북도의 함북지부(咸北支部)를 조직하고 그 회장에 취임, 좌우 합작적(左右合作的)인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1920. 8. 22∼8. 31)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5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