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북 온성(穩城)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 온성군 영충면(永忠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이 쏜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이곳은 함북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3월 15일 간도(間島)에서 활약하던 무장독립군 500여 명이 두만강(豆滿江)을 건너 일경 및 수비대와 전투를 벌여 크게 승리한 곳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3월 30일 천도교인 전창우(全昌禹)는 김창욱(金昌旭)을 찾아가 독립선언서를 전하고 각지의 동지들과 연락하여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김창욱은 적극 찬동하고 안병손(安秉孫)을 찾아가 그의 협력을 구하였다.
이들은 수 차례에 걸쳐 합의를 한 후, 4월 4일 회덕동(懷德洞) 회동교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대형 태극기 1매와 소형 태극기 35매를 제작하였으며, 만세시위에 참가 할 동지들 포섭에 전력을 기울였다.
4월 4일 오전 10시경, 회덕교에 250여 명의 시위군중이 모이자, 이들은 독립만세시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연설을 하고, 이어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리고 영충면사무소를 지나 북창평(北蒼坪) 장터를 향하여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급보를 받은 북창평 헌병파견소에서 15명의 헌병이 출동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그때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던 최기철은 일경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靑年(新韓靑年黨, 1920) 創刊號 45面
- 朴殷植全書 上卷 72面
- 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料(國家報勳處) 第7輯 83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78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