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평남 순천군(順天郡) 은산면(殷山面)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고, 1920년 12월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 일명 대한청년단)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해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2일 은산면에서 천도교구장(天道敎敎區長) 김기수(金基洙)의 주도로 1,000여 명이 모인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3월 4일 유경중(劉景重)ㆍ방기후(方基厚)ㆍ조운룡(趙雲龍)ㆍ이덕수(李德泰)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청년단은 광복군 사령장(司令長)인 조맹선(趙孟善)의 명령에 따라, 1920년 12월 17일 조용하(趙用河)를 단장으로 국내에서 군자금 및 단원 모집, 관공리(官公吏) 처단 등을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이었다. 조용하 등은 1920년 10~11월경 평북 영원군(寧遠郡)에 도착한 후 크게 두 갈래로 지역을 나누어 출발했다. 윤창철(尹昌哲) 등은 평남 성천군(成川郡) 방면에서, 조용하 등은 평남 개천군(价川郡)과 순천군 방면에서 단원과 군자금을 모집할 계획이었다. 조용하는 궁이양(弓履陽)에게 단원 모집 등을 부탁하여, 12월 17일(음력 11월 18일) 순천군 선소면(仙沼面) 남포리(藍浦里) 장두현(張斗鉉)의 집에서 동지 16명이 모여 대한독립청년단을 결성하였다. 단장은 조용하가 맡았으며, 이후 50여 명의 단원을 모집하였다.
1920년 12월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
- 每日申報(1921. 8. 8)
- 三一運動秘史(李炳憲, 1959) 98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3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