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전라북도 전주에서는 일제 경찰의 경계가 삼엄한 가운데 신흥학교(新興學校)와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의 학생, 천도교도와 기독교도 등의 종교인은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제작 및 「독립선언서」 등사 등 준비를 추진하였다.
3월 13일 전주면 남문 밖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승우는 현재 서학동(棲鶴洞)에 있었던 전주공립제2보통학교에서 경원동(慶園洞)의 전주우편국(全州郵便局)까지 군중 속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두 손을 들어 만세를 연호하였다. 군중이 행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자 일제 경찰은 무력을 앞세워 약 2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에 일단 해산하였으나 오후 3시 남문 밖에서 약 100여 명이 만세운동을 재개하였다. 이날 만세운동은 주야에 걸쳐 5회를 반복하며 일어났다. 군중은 자정이 넘어서야 해산하였다. 만세운동은 다음날로 이어졌다. 3월 14일 전주면 완산교(完山橋) 일대에서 약 300명의 군중이 중심 시가로 행진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고 체포되었다.
이승우는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8월 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1919. 8. 4)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3권 495~4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