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26년 9월 참의부원 (參議府員) 이수흥 (李壽興) 과 같이 안성 (安城) 부호 (富豪) 박승대 가 (朴承大家) 에 침입하여 군자금을 요구 불응하자 이수흥 (李壽興) 이 사살함
2. 1926년 동대문파출소 습격 (이수흥 (李壽興) 과 같이)
3. 1926년 10월 25일수은동 (授恩洞) 전당포 (典當鋪) 를 단독침입하여 군자금을 요구하였으나 반항하므로 사살함
4. 1926년 11월피체 되어 1929년 12월 20일에 사형언도를 받고 1930년 2월 27일 사형 집행 당하였음
(이상 1.2.3.4항동아일보 (東亞日報) 1926.11.12, 1928.6.29, 1926.2.28 본회 (本會) 소장 사형관계서류 (所藏死刑關係書類) Reel No.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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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6년 동대문파출소 습격 (
3. 1926년 10월 25일
4. 1926년 11월
(이상 1.2.3.4항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기도 이천(利川) 사람이다.
이천 읍내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유창룡(柳昌龍)의 둘째 아들로서 동생 유남수(柳湳秀)와 함께 참의부(參議府) 국내 특파원 이수흥(李壽興)을 도와 무장항일 활동을 하였다.
1926년 5월 이수흥이 일 요인암살 및 군자금 모집 등을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자 동소문파출소 습격 2개월후인 동년 9월 10일 이수흥을 도와 경기도 안성에서 부호 박승륙(朴承六)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려고 하다가 불응하자 그의 아들 박태병(朴泰秉)등을 사살하였다. 또한 동년 10월 20일에는 이수흥이 이천의 현방리(玄方里) 주재소등을 습격한 뒤에는 동생과 함께 그를 도피시켜 주었다.
동년 10월 25일에 그는 서울 수은동(授恩洞) 전당포를 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려고 하다가 주인을 사살하기도 하였다. 서울·경기 일원의 이러한 4대사건으로 수천명의 일경이 동원되어 계엄상태가 수개월 계속되었으나 용의주도하게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26년 11월 마침내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수년간의 옥고 끝에 1928년 12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어 1929년 2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9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251.285.299.860.868.872.951면
- 기려수필 382.383.38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56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863~870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4권 1010~1016면
- 동아일보(1926. 11. 12, 1928. 6. 29, 1929. 1. 17, 2. 28,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