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4월 5일 오후 3시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에서 홍범섭(洪汎燮) 등 10여 명이 정산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장터에 모인 군중들은 일제히 호응하고 나왔다. 일본 헌병은 700여 명의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권흥규(權興圭)가 헌병이 발포한 총을 맞고 사망했다.
4월 6일 권흥규의 시신이 정산헌병주재소에서 목면 안심리(安心里)로 운구되었다. “대한독립만세”, “배일(排日) 선비 권흥규의 관”이라고 쓴 깃발이 운구 행렬 앞에서 휘날렸다. 장례식에 모인 약 1,000명의 군중은 만세를 외쳤다. 시위 군중은 일본 군경과 맞닥뜨리자 돌을 던지며 거세게 저항했다. 4월 7일에도 시위는 이어졌다. 정산면 와촌리(瓦村里) 등 3개 마을의 군중들은 산 정상에서 만세운동을 했다. 일본 군경은 참여자 체포 작업에 들어갔다.
이두상은 이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4월 27일 청양헌병분견소(靑陽憲兵分遣所)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70도(度)를 즉결처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3권 138~1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