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3월 27일 이창선(李昌善)은 마을 주민 납세 조사를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우리들도 주민을 독려해 독립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찬성한 심경지(沈敬之), 이재영(李載榮) 등이 자신의 거주지 주민에게 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하자 박희진은 만세시위에 힘을 보태기로 결심했다.
3월 28일 이른 아침 마을 주민 30여 명을 주도해 봉오리와 파포리(巴浦里) 산기슭에 모였다. 이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상서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도중에 약 3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은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처럼 만세운동에 참여해 군중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1919년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죄(騷擾罪)’로 태 9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예심계 : 1919. 7. 5)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19. 9. 18)
- 신한민보(新韓民報)(1919. 11. 1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551~5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