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21일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茂長里) 무장 읍내에서 김영완((金永玩)이 주도한 3.1운동에 참여했다.
김영완은 고종의 국장을 참례한 뒤 귀향하여 지역 인사들과 회합을 가졌다. 무장리, 성내리(城內里)의 인사인 김용표(金容杓)・이용욱(李庸郁)・김진석(金辰錫) 등 11명은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정하고 준비했다. 3월 21일 오후 4시 읍내 남산(무장공원)에 무장공립보통학교 학생과 청년 등 100여 명이 집합해 구한국 국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읍내로 이동했다. 이용욱・김용표 등은 시장 군중들에게 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했다. 뒤이어 김영완이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박흥선을 비롯한 군중도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다. 이어 이용욱・김용표가 군중들을 이끌고 남문을 지나 면사무소, 무장경찰관주재소에 이르는 만세 행진을 전개했다. 오후 6시까지 전개된 만세운동을 제지하기 위해 긴급 출동한 경찰에게 박흥선을 비롯한 10여 명이 체포되자 시위 군중은 해산했다.
박흥선은 만세운동 참가로 무장경찰관주재소 경찰에 체포되어 (고창경찰서에) 구류되었다. 1919년 5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3. 26 ・ 5. 2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5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