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충남 금산(錦山) 사람이다. 1940년 성동상과학교(城東商科學校)에 재학 중이던 그는 ≪순애보(殉愛譜)≫·≪흙≫등의 소설을 탐독하면서 점차 민족의식에 눈 떠갔다. 이후 그는 같은 고향의 김태영과 교류하면서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44년 3~6월 김태영과 김수동(金水同)의 집에서 동지들과 더불어 13차례에 걸친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하였다. 이들은 우선 일경과 식량공출 담당직원을 주살하고 철도에 멍석을 깔아 일본군 병력수송열차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 또한 독립운동가(獨立運動歌)와 '조선청년들아 단결하자'라는 내용의 벽보를 써붙여 동포들의 항일독립의식을 고취시키기로 하였다. 이와 더불어 만주의 독립군과 연락하며 독립전쟁을 펴기 위하여 자신들이 일본군에 입대한 후 전선(戰線)에서 일본군을 반격하는 방안을 세웠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다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1944년 7월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45년 5월 2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선고받고 김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45. 5. 23 전주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