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박제우는 1919년 4월 1일 충북 청주군(淸州郡) 북일면(北一面) 저곡리(楮谷里)에서 익명의 인사로부터 조선독립운동을 목적으로 4월 2일 청주시장에 모여 독립만세시위를 외칠 것을 알리는 통고문 1장을 받았다. 이를 널리 선전 격려할 목적으로 다시 동면(同面) 덕암리(德岩里) 김학술(金學術)에게 주어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을 부탁하였다. 4월 2일 장날을 맞아 청주 시내에는 항일독립의 염원을 촉구하는 벽보가 수없이 나붙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극심한 감시와 경계로 읍내에서는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밤 10시경 부근 일대의 산 위에서 수없이 횃불이 오르고 독립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급해진 일경의 출동으로 시위대는 해산 당하였고, 많은 인원이 체포되었다. 이 일로 인해 박제우는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6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法院 淸州支廳:1919. 5. 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79~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