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이미 일본 도쿄(東京)에서 전개된 2.8독립선언에 참가하고 목포로 돌아온 남궁혁(南宮赫)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전달했다. 이들은 태극기를 제작하고 만세운동을 촉구하는 경고문을 작성했다. 시위 당일인 4월 8일에 많은 인파가 목포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다. 김영주는 이때 함께 만세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20년 목포청년회(木浦靑年會)의 외사부장을 맡았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新幹會) 목포지회의 상무간사로 뽑혔다. 1929년에는 같은 지회의 재정부 상무간사로, 1930년에는 집행위원후보로 활동을 이어갔다. 1919년 6월 1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보안법(保安法)·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벌금 80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20. 5. 29, 1929. 1. 31)
- 매일신보(每日申報)(1920. 4. 20, 5. 26)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6. 21, 11. 22, 1929. 1. 30)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2. 27)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6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