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가평(加平)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화도면(和道面) 마석우리(磨石隅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처음에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이달용(李達鎔) 등에 의해 추진되었으나, 3월 16일 사전 발각됨으로써 좌절되고, 다수의 주도인사들이 일경에 붙잡힌 일이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김필규 등은 3월 1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밤 답내리(沓內里)·월산리(月山里) 주민들이 총궐기하여 마석우리(磨石隅里) 병참 앞으로 몰려가 붙잡힌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러자 일본 헌병들은 그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함으로써 5명이 즉사하고 5명이 중상을 입은 채, 시위군중은 해산되고 말았다.
일제의 탄압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음날인 3월 19일 이른 아침 일헌병들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을 연행해 갔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항고하였으나 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심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이해 7월 27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3·1운동기념비(철산교회 교우와 주민일동, 1993. 3. 1 건립)
- 判決文(1919. 6. 21. 高等法院)
- 判決文(1919. 5. 24. 京城覆審法院)
- 殉國先烈紀念碑(화도면사무소 소재, 1965년 11월 건립)
- 判決文(1919. 4. 25. 京城地方法院)
- 加平獨立運動史(申鉉晶, 1985) 253·25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44面
- 楊州郡誌(楊州郡, 1978) 233·234·256面
- 褒揚狀(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