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32
3. 1932.5월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10세때 통천보통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던 중 1923년 가족이 북간도(北間島)로 이주함에 따라 길림성 연길현 이도구(吉林省 延吉縣 二道溝)로 들어갔다가 다시 봉밀구 갑산촌(蜂密溝 甲山村)으로 옮겨 약 1년 반동안 거주하며 농사를 지었다.
16세 때에 다시 용정촌(龍井村)으로 옮겨 동명학교(東明學校)에 들어가 1년간 수업하다가 가정형편으로 중도 포기하고 야학(夜學)을 설치하여 거류동포들의 계몽사업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후 다시 화룡현(和龍縣)으로 이사하여 19세때에는 하얼빈에 있는 이모부 이종익(李鍾翊)의 집에 우거(寓居)하게 되었다. 21세되던 1930년 이모부에게서 약간의 노자를 얻어 하얼빈을 떠나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국무위원의 일원인 백범 김 구(白凡 金九)를 만났으며, 백범의 소개로 우선 영국인 경영의 버스회사의 검표원으로 생활을 하면서 자주 백범을 찾아 독립운동의 방략을 듣고 헌신·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는 또한 인삼행상으로 광동(廣東)·홍콩(香港) 등지를 두루 다니기도 하였으며 1932년 봄에 다시 상해로 돌아가 백범이 단장으로 있던 한국 교민단(僑民團)의 의경대원(義警隊員)으로 시무하게 되었다.
한편 이즈음 일본의 만주침략으로 중국이 국제연맹에 제소(提訴)하였으며 국제연맹에서는 그해 봄 만주에 조사단을 파견하자, 백범이 주관하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서는 본국과 대련에 단원을 파견하여 조사단이 보는 앞에서 일제 고관들을 폭살하여 우리의 독립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기로 결정하고 그를 선발하였다.
5월 4일 상해를 떠나 대련으로 가서 아옥정(兒玉町)에 있는 만철(滿鐵) 기숙사안 어느 동포의 방에 은거하면서 연락책임을 맡은 최흥식(崔興植), 무기 반입 등의 책임을 맡은 이성원(李盛元)·이성발(李盛發) 등과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였다. 동월 24일 거사를 이틀 앞두고 대련우체국에서의 비밀 전문(電文)이 단서가 되어 최흥식이 붙잡히고 그와 이성원·이성발 등도 차례로 붙잡혔다.
그는 관동청(關東廳) 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2차대전의 발발과 함께 여순(旅順) 감옥으로 이감되어 무려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4일, 옥중에서 일제에 의해 참살을 당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495·496·498·504·507·517·520·529·548·549·551·62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45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11면
- 조선민족운동연감 275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732·760·788·792∼794·797·79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0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74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35·1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