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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평안남도 순천(順川) 사람으로 천도교(天道敎)인이다.
1919년 3월 5일의 신창면 신창리(新倉面新倉里) 장날을 이용하여 박창빈(朴昌彬)·이윤영(李允榮)·황경환(黃慶煥)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그 진행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시위는 기독교(基督敎)인 박창빈이 2월 28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면서부터 계획되었다. 이에 그는 박창빈·감리교회 목사 이윤영·금융조합 서기 황경환(黃慶煥)·신창면 면장 김삼봉(金三鳳)·의사 함태호(咸泰鎬)·김찬수(金贊洙)·면내 유지 이수홍(李秀弘)·여전도사 김온유(金溫柔)·청년대표 이대근(李大根)·김순효(金純孝) 등 30여명의 동지들과 만나 시위계획을 협의하였다.
그는 이들과 여러차례에 걸쳐 회의를 거듭한 끝에 거사일자를 신창 장날인 3월 5일로 결정하고, 총책임자를 이윤영, 2번책임자로 황경환, 3번 책임자로 그가 결정되었는데, 이 순번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필사적인 것이었다.
또한 면장 김삼봉은 면사무소에 대한독립운동 준비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장기 게양대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선언문·선전문·동원장 등 10여종의 격문을 인쇄하여, 먼저 일본 측에 통고하고 각면에도 배포하였다. 특히 총책임자인 이윤영은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교사이던 아내 이마대(李瑪大)에게 거사 당일의 합창단으로 동원하기 위하여 학생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치도록 하였다.
3월 5일, 오전 10시 3천 5백여명의 군중이 면사무소에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는데, 독립선언서 낭독, 독립연설, 애국가 봉창, 만세 삼창의 순서로 식이 진행되었다.
이때 그는 군중과 함께 독립선언식이 끝난 뒤 대대적인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출옥후 그는 중국 임강현 모아산(臨江縣帽兒山)에 근거를 두고 이춘삼(李春三)을 단장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에 가입하여 순천지방 백산무사단장으로 활약하던 중, 1921년 3월 초 이춘삼의 밀령을 받고 군자금 모금을 위해 국내로 잠입, 순천에 온 이모(李某)와 만나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하였다
그는 곧 자산(慈山) 천도교구실에서 등사기를 이용하여 경고문(警告文)·입단청원서(入團請願書)·입단표(入團票)·자금 영수서(資金領受書) 등을 인쇄, 각 지방에 배포하여 군자금 모금과 함께 백산무사단원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일경에 탐지되어 이해 9월 초에 체포되었으며, 이듬해 평양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0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395·397면
- 동아일보(1922.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