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진남포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독립선언서 배포와 만세운동 동참을 제안받았다.
3월 1일 오후 2시 신흥리(新興里) 감리교회 광장에 5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고종에 대한 추모식을 마치고 ‘독립을 위한 시위행진’ 선포를 신호로 ‘대한독립’이라고 쓴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군중이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3월 2일 오전 10시경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400여 명이 진남포 시가지를 돌며 만세를 부르자 군중은 수천 명으로 증가했다. 만세운동은 3월 7일까지 지속되었다. 3월 9일에는 기독교계 학교들이 교문을 닫았고, 시내의 상점들은 철시했다. 3월 28일에도 상인들은 철시 시위를 했다. 한 달 정도 지속된 진남포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9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신문(朝鮮新聞)(1919. 3. 9)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399~40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