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4월 5일 오후 3시경 청양군 정산면 장날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 등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헌병들은 해산을 강제하고, 주도 인사 등 30명을 체포하여 주재소에 구금했다. 그러자 약 700명의 군중들이 시장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헌병들을 뒤따라 주재소로 가서 구금자 석방을 요구했다. 권흥규(權興奎)가 앞서서 석방을 주장하자, 헌병은 그를 향해 발포하였고, 권흥규는 현장에서 순국했다. 이어 4월 6일 권흥규의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에서 약 300명의 군중들이 서정리 시장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권흥규의 본가로 운구하는 중에도 이들은 각처에서 노제를 지내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광생리 등 3개 마을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7일 오후 9시경에는 와촌리 등 3개 마을 주민 150명이 신덕리 뒷산에 올라 횃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와촌리에서는 이철상 등이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철상은 만세운동 참가로 정산헌병주재소 헌병에 체포되어 청양헌병분견소에 구류되었다. 1919년 4월 27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의 즉결처분으로 태(笞) 7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38~142면
- 청양독립운동사(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6) Ⅰ 152~1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