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5544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柳元植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2021 훈격 애족장
1919년 3월 8일 황해도 은율군(殷栗郡)에서 독립선언서 약 500매를 기독교계 숭실학교 교사 김창덕(金昌德)에게 전달하여 신도들에게 배포하고, 동월 12일 정재염(鄭在炎)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여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8월을 받았으며,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장련청년회(長連靑年會)에서 집행위원, 회장 등의 직책을 맡아 활동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약소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민족대표 33인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유원식은 이러한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에 감응하여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에 따라 세계 식민지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믿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19년 3월 8일 황해도 은율군 장련읍(長連邑)에 있는 예수교 교회에서 박경준·오윤화·최태영 등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김창덕(金昌德)으로부터 받은 독립선언서를 5백 매 등사하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또 3월 12일 정재염에게 시장에서 만세운동 계획을 알려주고 이에 참여할 것을 권유해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3.1운동 이후에는 1925년부터 1927년까지 고향인 장련읍의 장련청년회(長連靑年會)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을 역임하고 회장에 선출되는 등의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7월 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았다.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9. 13)
  • 조선일보(朝鮮日報)(1925. 4. 20)
  • 동아일보(東亞日報)(1926. 1. 21, 1927. 3. 2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6집 51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303면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유원식(관리번호:35544)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