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약소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민족대표 33인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유원식은 이러한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에 감응하여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에 따라 세계 식민지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믿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19년 3월 8일 황해도 은율군 장련읍(長連邑)에 있는 예수교 교회에서 박경준·오윤화·최태영 등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김창덕(金昌德)으로부터 받은 독립선언서를 5백 매 등사하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또 3월 12일 정재염에게 시장에서 만세운동 계획을 알려주고 이에 참여할 것을 권유해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3.1운동 이후에는 1925년부터 1927년까지 고향인 장련읍의 장련청년회(長連靑年會)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을 역임하고 회장에 선출되는 등의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7월 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았다.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9. 13)
- 조선일보(朝鮮日報)(1925. 4. 20)
- 동아일보(東亞日報)(1926. 1. 21, 1927. 3. 2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6집 51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3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