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상순 유병민은 전라북도 전주군 이동면(伊東面) 화산리(華山里)에서 미국 기독교 선교사가 경영하는 신흥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학생인 김경신(金敬信)·남궁현(南宮炫) 등에게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전주에서는 이미 수일 전부터 3월 13일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거행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 경찰은 거사 당일은 아침부터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그러나 정오를 넘어서자 신흥학교 등 학생들과 종교인들은 남문 밖 시장 부근의 전주공립제2보통학교(全州公立第二普通學校) 교정 근처에 모여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시위대는 등사한 인쇄물을 뿌리며 전주우편국(全州郵便局)까지 행진했다. 이날 만세운동은 밤 11시까지 5회에 걸쳐 이어졌다. 군중은 밤 12시가 지나서야 해산했다.
유병민은 신흥학교 교사로서, 3월 상순 학생들에게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촉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12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3권·제9권 495~497면·280~2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