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함남 함흥(咸興) 사람이다.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중 1926년 여름에 동교생 10여명과 함께 학교 뒷산에 여기산(麗妓山)에 모여 민족사회에 이바지할 길을 모색하고 그 방법으로 농민대중을 계발하여 신사회 건설을 목표로 한 항일학생결사 건아단(健兒團)을 조직하였다. 그들은 먼저 농촌사회의 계발이 곧 독립운동의 기초가 된다고 보고 그들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농민을 계몽 지도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들은 수원군 안룡면(安龍面) 고견리(古牽里)를 비롯한 부근 여러 마을에 농민야학을 설립하여 농민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활동을 전개했는데 이때 단군 연호를 사용한 것이 후일에 말썽이 되었다. 1927년 3월에 동교를 졸업한 그는 김해공립농업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의 출석부 점호시, 일본어로 부르게 된 것을 조선어로 호명하는 등 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건아단의 이상실현에 노력하였다. 그런데 1928년 5월 1일 김해읍에서 거행된 어린이날 축하대회 때 축사한 내용이 문제가 되어 일경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국 건아단원 우종휘(禹鍾徽)와 교류한 서신이 발각됨으로써 붙잡혔다. 그가 붙잡히는 바람에 수원고농의 비밀결사 조직도 드러나게 되었다. 그는 1928년 9월 2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와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906·91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674면
- 동아일보(1928. 10. 15)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52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1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47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547·550·555면
- 수원농학 70년(서울농대, 1976) 51·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