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황해도 신천군(信川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신천군의 만세운동은 문화읍(文化邑)에서 시작되었다. 문화읍에서는 천도교인들과 기독교인이 연계하여 3월 11일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인근 각지로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였다. 거사 당일 오전 11시경 3백여 명의 시위대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니 장꾼들이 호응하여 1천여 명의 만세 대열은 시가를 누비며 행진하였다. 뒤를 이어 3월 15일 초리면(草里面) 달천리(達泉里) 장날에는 초리면·궁흥면·문화면 3개 면민들을 중심으로 연합시위가 일어났으며, 3월 19일 용진면(用珍面) 유천리(柳川里)에서도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왕경애는 3월 27일 신천읍 장날 무정리(武井里)의 훈련원 장터에서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세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왕경애는 1919년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28)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2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