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안성윤은 함북 성진군(城津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 고를 치렀다.
성진군의 만세운동은 함경북도 전도의 3·1운동을 촉발하는 뇌관 구실을 하 였다. 이 지역은 선교사 그레이슨 목사가 제동병원(濟東病院)을 설립하고 그를 통해 기독교가 일찍부터 포교된 곳이다.
성진의 최초의 만세시위는 3월 10일에 벌어졌으나 그에 앞서 상당 기간에 걸 친 준비작업이 진행되었다. 성진 기독교계의 지도자인 강학린(姜鶴麟) 등은 3월 10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그레이슨 목사관 구내의 고용인 주택에 등사판을 가져 다 놓고 밤을 새워가며 선언서 및 격문 3만매를 인쇄하였다.
안성윤은 1917년 9월경부터 성진군 욱정(旭町)의 캐나다 기독교장로회 소속 보신(普信)여학교 교사로 있었다. 3월 10일 오전 10시에 제동병원 광장에 욱정 교회 교인들을 비롯하여 군중 수천명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를 부 른 후 시가행진에 들어갔다.
시위는 오후에도 계속되었다. 오후 3시 반경 보신 학교 학생 약 40여 명은 일본인 상가·경찰서·우체국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 위하였다.
기독교도 약 200여 명도 학생들의 시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은 무력으로 이들을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오히려 군중의 분노를 사서 투석전이 벌 어졌다.
대대적인 시위에 놀란 경찰은 나남기병대에 지원을 요청, 이날 밤 나남 으로부터 기병 장교 하사 14명이 성진으로 파견됐다.
이 시위로 체포된 안성윤은 9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출판법 위반 및 소요로 징역 6월을 받고 항소하였다.
그러나 10월 11일 고등법원 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0. 7. 19, 1926. 7. 1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762~765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11)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