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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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安秉孫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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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2007 훈격 건국포장
1919년 4월 함경북도(咸鏡北道) 온성군(穩城郡) 영충면(永忠面)에서 전창우(全昌禹)·김창욱(金昌旭)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가 체포(逮捕)되어 징역 10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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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온성군은 함북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북만주 일대를 근거로 활약하던 독립군이 고국에 진입하는 첫 번째의 교두보였기 때문에 항일의식이 강열한 지방이었다. 1919년 3월 말 안병손은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전창우(全昌禹)의 제의를 받고 만세시위를 일으키는 데 동참하였다. 이들은 4월 4일 영충면(永忠面) 회덕동 회동교(懷洞橋)에서 시위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시위에 사용할 큰 태극기 1개와 작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시위 당일인 4월 4일 오전 안병손은 전창우와 함께 회동교에 모인 2백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영충면사무소를 지나 북창평(北蒼坪) 시장을 향하여 행진하였다. 급보를 받은 북창평 헌병파견소에서는 즉시 현병을 출동시켜 이를 해산하려고 하였으나 수적으로 우세한 시위대는 동요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였고,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시위 주동자는 체포되었다.

시위 후 체포된 안병손은 1919년 5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06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781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19)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5. 21)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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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안병손 - 함북 온성(穩城) 온성군 영충면 북창평 장터 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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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징역 10월(원판결중 피고에 관한부분 취소) 경성복심법원 1919-05-21 국가기록원
2 판결문 보안법위반 상고 기각 고등법원 1919-06-19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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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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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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