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함북 이원(利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11일 이원군(利原郡) 남면(南面) 차호시장(遮湖市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0일 이원읍내 일원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의 영향을 받은 전원숙(全元淑)을 비롯하여 변광국(邊廣國)·김탁(金鐸)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들은 3월 1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1일 오후 1시경, 마을 주민과 보통학교 학생 1천 5백여 명이 차호보통학교에 모였다. 이때 김탁(金鐸)이 군중들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시위군중도 여기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신태하(申泰廈)는 '조선독립국(朝鮮獨立國)'이라 쓴 큰 기를 들고, 주재소·면사무소·차호리시장·기독교회 등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리고 시위 주동자들은 시위대가 장소를 옮길 때마다 앞에 나서서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고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날 만세시위는 일본 경찰과 별다른 충돌 없이 오후 4시에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밤이 되자 일본 경찰들은 대대적인 검속을 벌였다.
이때 검거된 신태하는 약 4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1919년 7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718面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9.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