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안북도 선천(宣川) 사람이다.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일제의 국권침탈이 노골화되자 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를 중심으로 1906년에 이 갑(李甲)·전덕기(全德基)·양기탁(梁起鐸)·안태국(安泰國)·이동녕(李東寧)·이동휘(李東輝)·노백린(盧伯麟)·조성환(曺成煥) 등은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국권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선천에 신민회의 연락기관으로 태극서관(太極書館)을 설립하여 문화의 계발과 사상계몽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910년 사내(寺內)총독 암살미수사건이라는 소위 105인사건에 연좌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그후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에 근무하면서 선천남교회 교사로 재직하였는데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김석창(金錫昌)·홍성익(洪性益) 등과 함께 학생과 교인을 동원하여 선천에서 시위를 주동하였다.
동년 4월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임시정부 의정원의원에 선출되어 의정활동에 참여하였다. 동년 5월에는 임정 교통부위원에 임명되어 국내외 교통기관의 조직운영과 재정에 관한 수입, 지출 등을 관장하였다. 또한 1920년 1월에는 안동교통사무국을 지휘하다가, 안동교통사무국장 홍성익(洪成益)이 안동 태성(泰誠)병원에 입원 중 일경에 체포되어 피살되자, 동년 1월 29일 그가 후임 사무국장에 임명되어 재정자금의 모집, 통신업무, 인물 소개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특히 역체식 진전법(驛替式 進傳法)이라는 연락방법으로 안동과 황해도 간의 통신연락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다가 1921년 5월에 사임하였다.
이후 선천에 돌아와 계속 활동하였으며, 1936년 봄에는 안창호·이광수·오순애(吳順愛) 등과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의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7 8 9 13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43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25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3권 4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 508 530 941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2권 67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42 43 4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442 44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62 29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67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2권 128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760 762 766 767 769 770 77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3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841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74 343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6 9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11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27 36 44 162면